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케메네스 왕조 (문단 편집) == 민족성 == 그리스인들에게 사치스럽고 겁쟁이라고 까였지만[* 바지를 입었다고 우습게 봤다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은 화려하고 쾌활하며 상무적인 민족이었다. 다만 군사력에 비해서는 그리스를 상대로는 군사적 성과가 다소 딸리는 것도 사실이다. 후대의 [[사산 왕조]]가 체급이 훨씬 거대한 로마를 상대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인 것과 비교된다. 사실은 무장 측면에서나 당시의 페르시아가 그리스 지역을 잘 몰랐다는 것으로 조금 변호가 가능하다. 페르시아가 일단은 대제국인 것만큼 강한 군사력을 지닌 것은 확실하나 문제점은 그리스와 같이 중무장 보병이 없었고, 무엇보다 산지로 가득한 그리스의 지리 정보가 부족한 면도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 말기에는 정치적 혼란이었기에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패배했긴 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고전할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는 기록을 보면 대제국의 명성이 그렇게 헛된 것이 아니다. 형이자 황제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황자 퀴로스는 자신이 고용한 그리스인 용병 1만 명한테 "그리스인들이여, 나는 병사들이 모자라서 당신들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이 페르시아의 수많은 종족들보다 강인하고 용맹하다고 여겨서 데리고 오게 한 것입니다. 나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적들, 즉 페르시아의 백성들은 여러분에 비하면 형편없는 겁쟁이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나라의 군대보다 그리스인들이 더 강력하고 용감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출처: 실업이 바꾼 세계사/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회의를 할 때 술에 취한 상태와 맨정신 상태에서 두 번 한 뒤 결정을 내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은 술을 몹시 좋아하지만 남이 보는 앞에서 구토나 방뇨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 점에서 그들은 엄격하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중요한 안건을 술에 취해 토의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다음 날 술이 깨면, 회의장으로 사용된 집의 주인이 그 건을 다시 상정한다. 그리고 술이 깨어서도 동의하면 결정된 바를 실행에 옮기고, 그렇지 않을 경우 폐기한다. 또한 맑은 정신으로 미리 상의한 것은 술 취한 상태에서 다시 논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